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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스스로를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우리도 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적어도 그들은 첫눈에 반했다는 식의 있을 수 없는 경구로써 자기들의 감정을 무책임하게 미화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

 지금까지 남자는 여자의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매혹시키는지 언제나 막연하게만 느꼈다. 자기들을 서로 끌리게 만드는 것은 '막연하고 절대적인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해왔다. 한데 지금 남자는 문득 자기가 왜 여자를 사랑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눈치빠르고 다정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남자의 피곤을 살피지 않고 까다롭게 구는 지금의 여자는 둔하고 이기적인 것이 도무지 조금 전까지 기다렸던 위대한 연인이라고 봐줄 수가 없다. 여자에게 위로를 기대하다니, 한심하게도. 남자는 자조적인 기분이다.

(..)

여자는 혹시 자기들의 위대한 사랑이 순전히 자기 혼자만의 지혜와 노력으로 지탱되어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서운하기보다 억울한 기분이다. 그럼 나 혼자의 일방적인 감정이었나?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당장이라도 이 피곤한 자리를 모면하고 싶다는 표정이다. 나는 위대한 연인의 분위기를 되찾으려고 이렇듯 애를 쓰는 반면 그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시들한 눈길을 내 등뒤의 벽그림에 던질 뿐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나 혼자서 저 이기적인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안달을 해야 하는 걸까.

(..)

여자의 분석과 남자의 감상. 누구 쪽이 더 운이 좋으며 또 누구쪽의 생각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그것은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알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걸을 안다고 해서 자기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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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서로에게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라 믿은 여자와 남자가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다. 

우리는, 아니 나는 우리의 인연이 정말 특별하고도 위대하다고 쉽게 생각한다. 

숫자송에서도 그러지 않나? '60억 지구에서 널 만난건 7럭키야'. 

괜스레 내가 맺었던 혹은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수록, 특별하게 느껴졌으면 하는 욕망이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크게 힘을 쓰지 않게 됐다는 것

그 특별함에 감흥이 없으니 '관계'보다는 그 안의 '우리', 더 나아가 '나'의 모습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너가 맞니 내가 틀리니 등의 설전을 벌여봐야 이미 특별했던 그 관계는 오래전에 끝이 났고

이미 위대함을 잃어버린 시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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